2013년 10월 7일 월요일

신명기 20:1~20

<40자 메시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다른 무엇보다 주를 신뢰 의지하는가
(신명기 20:1~20)

지금 우리가 싸워야 영적 전쟁은
실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치른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먼저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것도
결국 예수님께서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것 뿐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과 지혜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시험과 연관해서 싸우거나
영적 전쟁의 최전방에 가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가정을 세우는 일
그래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일들 또한
소중한 일이며 그 과정에서도 영적 싸움은 존재합니다.

또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믿음이 부족하여 연약한 심령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공포가 전이되어
다른 이들까지 두려워하지 않도록
귀가 조치 시키는 배려 또한
군대의 수가 전쟁 승리요인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기드온의 300용사 선발 때처럼
여기서도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과정들을 보면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시고
자칫 우리 힘으로 이겼다 하는 교만이 싹트지 않도록
조치하셨습니다.
다만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해 나가며
주어진 사명들에 대해서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멀리 떨어진 족속들은
전쟁 전 화평 선언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은 화평 선언 없이 바로 진멸하라 합니다.
호흡이 있는 것을 모두.

이 명령이 잔인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땅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오래도록 기다리시며 기회를 주셨고
화평의 선언은 최후의 제안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거절하면 이제 더 이상의
기회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끝에 가서 진멸 심판하심을
치졸하고 잔인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할만한 자격이
피조물인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오래 참으심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못한 교만의 발로일 뿐입니다.

포위된 성의 나무에서 과목은 보호하고
수목을 찍으라 하는 것도
어쩌면 수목은 우상을 만들거나 제사하는 도구로 쓰였기에
그 여지를 없애고, 오히려 그것으로 전쟁의 무기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우상으로 망해가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뜻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주님의 임재와 임마누엘을 믿는다면
오늘 그 어떤 두려움도 나를 붙잡지 못하게 하고
담대히 성전(聖戰)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가정과 추수와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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