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4일 수요일

슬로레 책읽기 회원을 모집합니다.

함께 모여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정해진 시간만큼 천천히 읽는
<슬로레(SLORE)> 책읽기 모임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책읽기' 마음은 있지만 오래도록 머뭇거리고 있다면 지금 시작하세요^^
즐거운 책읽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 아래 링크를 통해 책사랑 '슬로레'(Slore) 밴드에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http://band.naver.com/n/5LPJClMZ
- 주위분들에게 SNS를 통한 공유와 펌을 통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 문의 : 책사 라종렬( 010-5686-3626 )


2014년 1월 17일 금요일

마태복음 1:1~17

<40자 메시지>
예수님은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백성 모든 이의
그리스도 메시아 왕이심의 복음을
나는 믿습니다
(마태복음 1:1~17)

창세기 11장에서 마태복음 1장을 보니
창세기 12장부터 예수님까지의 역사가
족보로 기록되어 있어서
수천년을 순식간에 지나온듯 합니다.

마태가 전한 복음은
복음 곧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 왕)이시며
마침내 구약에서 약속된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들을 통해서
구원을 선포하고 성취해가시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주제보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마태복음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마태가 말하고자 하는 복음을
미리 선언하며
우리를 하나님나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
먼저 헬라어 성경은 처음 시작하는
어순이 우리말 성경과 다릅니다.
영어번역이 원어와 같습니다.
A record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예수 그리스도 - 다윗 - 아브라함)

그리고 계보의 끝에는(17절)
아브라함 - 다윗 - 그리스도 순으로 나옵니다.

그리스도(헬라어, 메시아(아람어);왕)의 계보인데
그리스도가 곧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먼저 선언하고자 함입니다.

애굽의 420년 종살이때처럼
하나님께서 더이상 선지자를 보내지 아니하시고
구약의 계시각 끝나난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인 400년
마침내 그 끝에 종된 이스라엘이
그토록 고대하며 갈망하던 그 메시아가
드디어 오신 것을 선포하는 계보입니다.

로마의 황제도, 유대인의 왕 헤롯도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메시야(왕) 곧
참된 왕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엄청난 선포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왕 되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한 이래로
가인의 후예들의 거침없는 반역의 행보,
그리고 그런 행보 함께 타락해간 인간들
그러나 셋의 후손 가운데
아담에게 약속하셨던 여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말미암아
계보를 이어올 수 있었고
마침내 그 언약이 성취되는 때가 이르러
만왕의 왕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
다윗의 자손이라는 얘기는
바로 예수님이 왕의 계보라는 사실과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얘기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열방을 구원하시리라던
그 언약을 드디어 예수님께서
온전히 성취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성취로서 오신 구원자이시며
메시아(왕)이십니다.

*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언급에서도 보여지지만
계보에 있는 여인들의 이름을 통해서도
열방을 구원하시리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방 여인들인
유다의 며느리 다말, 여리고성의 라합
모압여인 룻, 우리야(헷족속)의 아내(밧세바)
더군다나 이들의 면면과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부끄러운 부분들이 있음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열방의 구주(救主)이십니다.

*
마태의 복음
곧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왕)시라는
선포를 오늘 다시 듣고
나는 우리 주(主) 예수(구원자)님이
그리스도(메시아;왕)이심을 믿으며
내 삶의 주로 섬기며
주의 통치를 따라 즐거이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나의 왕 나의 주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2014년 1월 16일 목요일

창세기 11:1~9

<40자 메시지>
겸손히 주를 높이고
주 말씀 따라 새 피조물 된
정체성과 사명을 기억하며
즐거이 순종하며 충성해요
(창세기 11:1~9)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 했습니다.
인간은 넉넉해지고 부요해지면
자신의 정체를 망각하고 교만해져
하나님보다 세상을
하나님보다 물질을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이웃이
하나로 소통할 수 있던 축복을
인간들은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도성은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됨을 다시 보여주고
그런 인간을 심판하시면서도
다시 또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시날땅 바벨에서 만납니다.

*
사람들이 동방으로 간 곳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이 만나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 하는 곳입니다.
이곳이 거대 문명 발생지가 된 것은
풍요로운 땅 때문입니다.

그러한 곳에서 성과 탑
곧 발달된 문명과 성을 보면서도
인간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소통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합니다.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자신들이 하나님같이 되려고 했던
아담과 같이 어리석은 생각을 모의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어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 그들이
자신의 영광과 이름을 내며
유명한 자 되어
하나님이 주권보다 자신들이
주인이 되려 했던 모습이
본분과 사명을 망각한 모습입니다.

오늘 내가 그렇게 건축하고 이루며
살아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주를 위해 산다고 주의 일을 한다 하면서도
정작 나를 위하고 나의 이름을 내어서
동일한 바벨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하게 말씀 앞에 돌아보고
그러한 요소들을 끊고 버릴 수 있길 간구합니다.

*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으로
다시 멸망을 초래하는 어리석음을 깨워
언어를 혼잡케 하므로 흩으셨습니다.
7절에는 하나님께서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삼위 하나님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인간들은 소통의 도구인 말로
창조의 질서를 깨고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간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창조로 구원과 생명을 이어 가심을
다시한번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원래 창조 때 명하신 것처럼
생육 번성 충만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힘과 능력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러나 돌아보면 하나님의 주관하심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의 문명과 문화들
그 거대함과 화려함 속에서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망각하고
자신의 지혜에 취해 교만해 지는 모습들...
그러나 그러한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일뿐임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품으셨던
그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것입니다.

내 이름을 아시고
내 모든 것을 지으신 주님이
나와 우리와 모든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며
섭리하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
언어를 혼잡케 하사
온 지면에 흩으신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의 사건 이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으로 강림하셔서
다시 소통케 하는 방언의 역사로
하나되게 하심을 이루십니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하나님의 복음이 열방을 향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문제가 될 때
방언과 연관된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복음
인류 모두를 향한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열방을 구원하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이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인간을 지면에 흩으신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명령을 따라
생육 번성 충만하게
이 땅을 다스리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소통하며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운데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다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피조물로 거듭난 은혜안에 사는 우리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께서 지으시고 부르신대로
즐거이 순종하며 소망하며
충성되이 살아가길 다시 다짐합니다.

*
우리의 말은
교만으로 죽이는 말이 아니라
겸손으로 살리는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충성하여
생육 번성 충만케 되기를 원합니다.



2014년 1월 15일 수요일

창세기 10:1~32

<40자 메시지>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거룩한 길로 다니며
주님과 이웃과의 모든 관계 속에
거룩을 심는 하루 되시길
(창세기 10:1~32)

노아의 세 아들에 대한 계보가
선별적으로 기록되면서
모두 70족속의 명단과
이들로부터 여러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족속, 언어, 지방, 나라대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의 실행은 결국 하나님께 주권이 있었습니다.
생명을 잉태하고 번성해가는 일들 모두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로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약속하셨고
비록 인간의 불순종이나 패역함이 극에 달해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약속을 이뤄가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인생과 달리 식언치 아니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주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변하지 않는 현실의 답답함 속에서도
주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거룩한 길로 다니겠습니다.

*
노아의 아들은 셈, 함, 야벳의 순서인데
족보의 순서는 야벳, 함, 셈의 순서입니다.
창세기의 족보와 성경의 족보들은
모두 중요한 이야기의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뒤에 이어갈 이야기의 배경이 되기에
순서나 반복, 숫자, 강조점등을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일전에 아담 이후 경건한 자손의 계보에는
7번째 에녹과 10이라는 숫자가 중요했고
족보에는 맨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절대적 패턴은 아니지만 나름의 규칙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아의 세아들의 족보는
순서와 숫자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순서가 야벳, 함, 셈의 순서입니다.
창대하리라 약속했던 야벳
그리고 함은 셈의 종이 되리라던 예언
셈의 하나님을 찬양하라던
노아의 축복 예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에 언급된 셈의 자손에서
결국 아브라함이 나오게 됩니다.
경건의 자손 계열이라고 볼 수 있으면서도
그 자손의 계보 역시 하나님의 역사로
이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지명하여 부르시고
주 백성, 주의 자녀 삼으신 것이기 때문에
택하심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 이스라엘 됨에
주의 택하심과 부르심과 백성됨과
자녀됨 그리고 왕같은 제사장 된
나의 나됨은 오로지 주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그 복을 누리며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노아의 아들들의 족보에 언급된 족속이
모두 70족속입니다. (야벳-14, 함-30, 셈-26)
그리고 자손들의 명단이
모두다 상세하게 기록된 것은 아니고
선별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더군다나 70이라는 숫자에 맞춰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해 갈 때도 70이 나오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70인의 장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파송된 70인의 전도인등
70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하고 충만한 수로서
온 인류를 대표하기도 합니다.
이들로부터서 각기 언어, 종족, 지방, 나라가
나뉘어 졌다고 말합니다.

언어가 나뉜 바벨탐 사건이
이들의 번성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70족속 가운데 다 소개하지 못한
많은 족속들 역시
노아의 계보로부터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
야벳의 자소늘은 간략하게 소개되지만
광범위한 지역이고
셈의 자손들은 특별한 업적이 없이 소개되는데
유독 함의 자손은 가장 많은 족속과
여러 특징들을 기술합니다.

그런데 함의 후손들을 소개하면서
익숙한 족속과 지명들이 나옵니다.
구스나 미스라임(애굽,이집트)
니므롯 용사요 용감한 사냥꾼
시날땅의 바벨
앗수르의 니느웨 큰성읍 건설
가슬루힘(블레셋)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소돔과 고모라등입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이 종으로 살았으며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늘 걸림이 되었던 자들이고
바벨은 바벨탑 사건이 있었으며
그 근처에서 아브라함이 살았던 우르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곳임을 이후에 알 수 있습니다.
앗수르의 니느웨성은 요나서에 기록된 성입니다.
앗수르 자체로 이스라엘에게 위협이었지만
니느웨의 타락은 요나의 전도로 회개하긴 하지만
이후에 결국 망하고 맙니다.
블레셋은 두고두고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소돔과 고모라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다
후에 불의 심판을 받았던 죄악의 온상이었던
성입니다.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함의 자손들이
마치 가인의 후예들 같이
세상적으로는 엄청난 문명을 건설하지만
하나님과 상관없는 세움이었기에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위협하고
그 나라 백성들을 미혹하거나 거침이 되는
관계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가
이토록 오래 그리고 널리
그 영향력이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알면
오늘 나의 언행심사에서
거룩함을 지켜가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주의 말씀으로 나를 빚으사
모든 것에 주의 통치를 받아
온전함으로 나아가기를 더욱 기도합니다.

*
10:25에 셈의 자손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었다고 말합니다.
보통 이 때에 바벨탑 사건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바벨탑 사건의 언어의 혼잡에 대해서는
내일 나옵니다.

언어의 혼잡과 흩으심이 어떤 의미이며
후일에 언어가 하나되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부분입니다.

*
생육 번성의 축복 속에서
경건한 족속으로 택함 받음에 감사하며
그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주앞에 나아가며
허락하신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며
거룩한 길로 다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