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30일 월요일

신명기 16:1~17

<40자 메시지>
절기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기억해 감사하며
소외된 자들과 나누게 하신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신명기 16:1~17)

이스라엘은 일 년에 세 차례
큰 명절(절기)을 지켰습니다.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초실절 맥추절 오순절)
초막절(장막절)
이렇게 세 절기 때마다 온 백성이
축제 가운데 되새기게 하신 뜻이 있었습니다.

* 유월절(무교절)
애굽의 종 되었던 시절은 밤 같은 시간이었는데
그곳에서 애굽의 헛된 신들을 물리치고
마지막 신으로 추앙받는 바로왕의 장자
곧 자칭 신의 아들의 죽음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사실과
종 되었던 상태에서 구원하시며
죽음을 유월(넘어가다, 지나가다)하게 했던
그 구원의 사건을 상기하게 하는 절기입니다.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먹으면서
평생에 그날을 잊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유월절 양으로 죽으셔서
우리들을 대속하시고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의 그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예배와 묵상을 통해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 칠칠절(초실절 맥추절 오순절)
곡식을 추수하기 전 곧 노동이 시작되기 전에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주신 복을 헤아려 소외된 자들과 더불어 함께 먹고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자신들이 어려울 때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듯이
그 사랑을 받은만큼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는 것이
하나님 사랑에 대한 합당한 반응으로서의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오순절 그날에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기억 깨달음)하게 하시고
또한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주신 은사로 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은혜에 대한 기억과 소유의 나눔은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고
결국 자신과 공동체를 살리는 일입니다.
성령님 통해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도우심에 감사드립니다.

* 초막절(장막절)
추수를 마친 뒤에도 또한 절기를 지키며
모든 이들과 더불어 주신 것을 감사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잔치를 맛보게 합니다.

*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
곧 성전에서 하나님을 뵙고
주신 대로, 받은 대로, 힘 대로 드리며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축제로 상기하는 시간,
이 땅에서 살아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거룩한 주의 백성 됨의 영광을 찬미합니다.

2013년 9월 29일 일요일

신명기 15:1~23

<40자 메시지>
섬김과 나눔의 복된 삶을 통해
사랑과 관용이 넘치는 주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길
(신명기 15:1~23)

주님이 가나안에 세우길 꿈꾸시는 공동체는
은혜에 합당한 반응과 주님의 부요를 함께 누리는
섬김과 나눔, 사랑과 관용이 넘치는 공동체였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자원은
사람들의 욕심 또는 자연 재해로 인해
편중될 수 있으므로
부한 자와 가난한 자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빚을 지거나 종(노예)이 생길 수 있기에
빚과 종에 대한 대물림이 이어지지 않도록
면제와 해방을 법으로 정하십니다.

빚은 매 7년마다 면제하라 합니다.
모든 자원의 주권이 원래 주님이셨기에
형제에게 빌려준 것도 결국엔 하나님의 것이며
이미 있는 자들은 그것 없이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면제의 규정을 악용하지도 말고
빚 독촉이나 법에 대한 악용과 오용도 경고합니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형제에 대한
사랑과 관용만이 이 말씀에 순종해서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들이
구제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당시의 종들은 고용주와의 사이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생활비를 충당하는
상호 의존적인 제도의 의미도 있었지만
이도 7년이 지나면 종을 자유케 했습니다.
그러나 종들 가운데는 자유를 거부하는 일도 있을 만큼
주인과 좋은 관계도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종으로서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즐거이 주님의 종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도
주님의 은혜 아래 순종함이
참 자유를 누리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착취와 억압과 오용이 아닌
후히 주고 필요를 채우시는 우리 주님의 부요하심 안에
날마다 감사하며 누리며 살아갑니다.

초태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함께 잔치하며 공동체가 먹고 마시게 하신 것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이 주신 것임을 고백하고
주신 뜻이 함께 누림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함께 먹고 마시므로
천국의 잔치를 경험하며 감사로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성령강림 이후 형성된 초대교회에서
유무상통하며 살았던 그 아름다운 공동체가
주님이 꿈꾸시는 교회이기에
오늘 우리의 교회에서도
섬김과 나눔으로 사랑과 관용이 넘쳐
서로 돌아보아 격려 위로하며 함께 세워져가는
사랑의 공동체 되길 기도합니다.





2013년 9월 27일 금요일

신명기 14:1~21

<40자 메시지>
거룩한 백성 택한 백성인
교회의 삶과 행동과 문화는
예수 안에서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야죠
(신명기 14:1~21)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가증한 풍습과 식습관으로 점철된
문화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광야의 결핍만큼 역으로 풍요로운 그 땅의 문화는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기 충분했기에
거룩한 백성(성민), 택한 백성(선민)인 이스라엘이
충분히 부정하게 미혹될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배은망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미리 경고하면서
성민과 선민으로 구별된 문화를 세워가시기 위해
풍습과 먹는 것과 행동들에 대해
가나안과 구별된 것들의 기준들을 세우셨습니다.
풍습과 먹는 것과 행동 자체가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 딤전4:4)
하나님께서 임의로 규정하신 기준을 따라
정과 부정이 나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 - 딤전4:5)
순종함으로 거룩의 정체성을
지키고 세워갈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다양한 문화의 홍수 속에서
하나님은 이 성민과 선민이
생명의 삶 곧 거룩한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오늘 새이스라엘이요 교회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민과 선민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구별된 가치관 세계관 정체성을 가지고
삶의 모든 분야에서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물로 드릴 수 있기를...

2013년 9월 26일 목요일

20130927 - 인생은 비정규직이다.

20130927 - 인생은 비정규직이다.


바둑 용어 중에서 ‘미생(未生)’이라는 말은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있지 않은 상태 혹은 그 돌을 이르는 말이다. 완전히 죽은 돌을 뜻하는 사석(死石)과는 달리 미생은 완생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돌을 의미한다는 차이가 있다. 인터넷 포탈 다음 웹툰에 윤태호라는 작가는 이 단어로 된 웹툰을 연재하면서 바둑 한 수 한 수에 비정규직의 애환을 담았다. 바둑을 전공하던 젊은이가 삶의 방향을 전환하면서 인생을 배워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화를 보면서 우리네 젊은이들과 부모들 특히나 직장인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공감했고 특히나 비정규직의 아픔들을 좀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비정규직(非正規職)의 사전적 정의는 고용인이 특정한 기간 내에 고용주를 떠나기로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대한민국 노동부의 정의에 의하면 계약직, 일용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뜻한다. 이 직의 현대사회는 불확실한 사회이고, 급격한 환경변화에서도 적응하기 용이하고 작더라도 효율적일 수 있는 조직을 위하여 필수 인력외의 인력을 유동적으로 조절하여 대표적인 경직성 경비인 인권비의 유연화를 위해 생겨났다.  만일 이러한 취지를 제대로 수용하고 적절한 임금이 보장될 경우에는 큰 문제 없이 운영되어질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공기업이나 경영자들은 이 취지를 악용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저비용으로 안정적인 보장을 원하는 고용인을 최대한 활용하지만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점들을 최대한 이용한다.


김어준 총수는 그의 책 『건투를 빈다 -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 매뉴얼』 에서 ‘인생은 비정규직이다. 삶에 보직이란 없는 거라고. 직업 따위에 지레 포섭되지 말라고. 하고 싶은 거 닥치는 대로 덤벼서 최대한 이것저것 다 해봐라. 그러다 문득 정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개미군체의 병정개미는 되지 말라고.’ 기록한다.  결국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공식을 적용한것이라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폐해 확대와 취지를 무색케 하는 세력들 앞에서는 척결을 위해 싸움도 해야 하지만, 하루 이틀에 끝날 싸움이 아니기에 지금 감당할 그 시간들을 차라리 즐겨 가며 싸우는 것이 더 현명한 길로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직업이나 꿈을 결정하거나, 벌써부터 학생시절에 친구 사귐에 있어서도 애인이다 뭐다 제한적인 사귐에 갖히지 말라 한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보다 앞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더 많고, 아직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더 많기에 벌써 매이거나 정해진다는 것은 억울하고 어설프며 어리석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일찍 꿈을 찾아 오랜시간 갈고 닦은 이들이 간혹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 그런 영웅보다 보통의 사람들이 더 많고 또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이루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 이런 삶이 비관적이며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세상을 넓게 누리며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위 한 우물 판 이들의 소원 가운데는 우리가 너무도 소소하게 생각하는 그런 일상을 경험하지 못해 그들이 경험해 보고 싶다는 얘기들을 대부분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 철이 들고 또 은퇴를 하고 나면 결국 자신의 전공마저도 부족함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평생 보직이라 여기며 매였던 그 삶이 한 켠으로 세상을 넓고 깊게 살지 못한 자신을 책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직업 뿐 아니라 우리가 자의든 타의든 갖게 되는 사회적 위치나 관계에서 형성된 많은 일들 가령 친구, 자식, 부모, 동료, 선수등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 언제 고용해고 될지 모르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인생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시간들이 정해져 있든 그렇지 않든 다만 지금 일 할 수 있다는 사실과 부족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사는 비정규직 인생을 속히 인정하는 것이 지혜롭다. 비록 지금은 미생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완생으로 가는 여정에 있기에 오늘을 자족하며 즐거워함이 하루하루 쌓여갈 때 더 즐겁지 않겠는가!

웃는사람 라종렬 목사
광양시민신문 쉴만한물가 칼럼 기고글

신명기 13:1~18

<40자 메시지>
우리가
마음과 뜻을 다하여
우리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종 된 우리를 속량하심 때문이죠
(신명기 13:1~18)

궁핍과 결핍의 땅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신앙하는 일이 어렵지만
풍요과 번영의 땅 가나안에서는
더 큰 미혹이
한 분 하나님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기에
더더욱 어렵습니다.  

가나안의 풍요로움은
하나님의 속량 곧
애굽 종 되었던 땅에서 구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시며 보호하셨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그 은혜에 대한 기억을 둔화시키고 망각시킵니다.

지금 우리 삶에도 동일합니다.
말씀의 홍수 가운데서도 목마르고
허다한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풍요와 번영 속에서도 세상을 향한 영향력은 적고
구경꾼은 많으나 헌신자는 없고
안일한 만족에 빠진 게으르고 배부른 돼지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그 부요를 허락하신 이의 은혜와 뜻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내부적으로는
거짓 선지자들의 이적과 기사를 수반한 미혹들
심지어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까지도
잘못된 이단적 가르침에 미혹된 공동체도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고 그 도에서 떠나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따르며 경외하며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섬기며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만을 섬기지 아니하고
혼합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데 있어서
내부적 요인에는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될 정도의
결단 내지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무지몽매한 소경같은 지도자
가까운 것 같으나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자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어 공동체를 분열 오염시키는 자
이들에 대한 분별과 단호히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늘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묵상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켜갈 수 있길 원합니다.


2013년 9월 25일 수요일

신명기 12:20~32

<40자 메시지>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신 대로
선과 의를 행케 하소서
(신명기 12:20~32)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주님이 우리를
그의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심 따라서
자기 이름을 두시기 위해서
택하신 성전으로 우리가 살아갈 때에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법을 따라 사는 거룩한 백성임을
늘 기억하기 원합니다.

먹을 때에도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분께
감사함으로 먹고 마시며,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먹을 것이며
더불어 주신 모든 것을 즐거워 할 것입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에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드릴 때에도
아낌없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선과 의를 행할 것입니다.
드림에 인색하지 말고
하나님의 것을 내 맘대로 도용하지 말 것이며
주신 것 안에 자족하며
허락하신 은사를 따라 자발적으로 섬길 것이며
베풀어야 할 이웃이 있거든
힘에 더하도록 할 것이며
작은 소자에게 늘 주께 하듯 할 것입니다.

거주 할 때에도
멸망할 자들의 문화와 유행을 따라 사는 일을 삼가고
그 모양이라도 버릴 것이며
여호와께서 거리시며 가증히 여기는 것들을
잘 분별하며 가감하지 말고 따를 것이라.
혼탁한 문화 속에 우리 자녀들을 유기하지 말고
거룩한 나라의 삶의 습관이 몸에 배이도록
무시로 본을 보이며 가르쳐
이 세대에 물들지 아니한 거룩한 자녀로
양육되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소서.

오늘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삶이 주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제사 되길 원합니다.


2013년 9월 24일 화요일

신명기 12:1~19

<40자 메시지>
예배의 삶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곧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그 뜻대로 드려야
합당한 예배입니다
(신명기 12:1~19)

순종은
여호와의 은총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그분의 선하심을 인정하는 방도입니다.
(- 레이몬드 브라운)

사회의 양심이 부도덕하다고 정죄한 것을
하나님이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에게 요구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도덕없는 종교는 반드시 소멸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의 비도덕적인 종교행위의 득세는
비상식적이며 극단적인 종교행태로
많은 관계의 파괴와 신앙적 갈등의 양산과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규와 규례를 준주하는 순종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반응으로서의 예배는
복음에 대한 응답인데
이 응답은 사람마다, 지역과 문화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말씀)이 기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합주의적인 신앙으로
부정하게 얼룩지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드려
내가 원하는 만큼 하나님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기도나 예배 및 신앙은
결국 내가 만든 우상일 뿐입니다.

십계명 제 일 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하신 뜻대로
우리는 예배할 때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무엇보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그 뜻을 따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받으실 만 하고 통합적이며,
희생적이고 즐거우며, 자비롭고 일관된 예배로
여호와의 복과 안식과 평안을 즐거워하며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배해야 하기에
주님의 통치 영역 어디에서나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일상이 거룩한 예배 되길 원합니다.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신명기 11:18~32

<40자 메시지>
복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열매와 형통함이 따름
(신명기 11:18~32)

화석화된 말씀이 아니라
마음과 뜻에 곧 심비에 새긴 말씀이어야
삶이 되고 향기되어 전달됩니다.
그 말씀으로 나를 빚고
자녀와 가정을 온전히 세우고
교회 공동체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충성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최춘선 할아버지)
여호와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자는
그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충성된 자입니다.
그래서 왕되신 주님의 인도에 즐거이 순종하며
세상에 끌려가는 삶이 아닌
다스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World가 아니라 Word !
World(세상)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Word(말씀)로 들어갑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길이 살게 됩니다.(- 왕대일)

복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편1:2~3)

우리에게 앞에 주어진 삶에
복과 저주의 갈림길이 놓여 있습니다.
복있는 자의 길은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좁은 길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 할 길이기에
우리 예수님이 먼저 가시며
우리도 자기를 부인하고 그 길을 따르라 하셨습니다.
나는 그 길의 형통을 확신하며
오늘도 주님을 따르렵니다.

I will follow him.(영화 Sister Act ost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