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27 - 인생은 비정규직이다.
바둑 용어 중에서 ‘미생(未生)’이라는 말은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있지 않은 상태 혹은 그 돌을 이르는 말이다. 완전히 죽은 돌을 뜻하는 사석(死石)과는 달리 미생은 완생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돌을 의미한다는 차이가 있다. 인터넷 포탈 다음 웹툰에 윤태호라는 작가는 이 단어로 된 웹툰을 연재하면서 바둑 한 수 한 수에 비정규직의 애환을 담았다. 바둑을 전공하던 젊은이가 삶의 방향을 전환하면서 인생을 배워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화를 보면서 우리네 젊은이들과 부모들 특히나 직장인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공감했고 특히나 비정규직의 아픔들을 좀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비정규직(非正規職)의 사전적 정의는 고용인이 특정한 기간 내에 고용주를 떠나기로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대한민국 노동부의 정의에 의하면 계약직, 일용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뜻한다. 이 직의 현대사회는 불확실한 사회이고, 급격한 환경변화에서도 적응하기 용이하고 작더라도 효율적일 수 있는 조직을 위하여 필수 인력외의 인력을 유동적으로 조절하여 대표적인 경직성 경비인 인권비의 유연화를 위해 생겨났다. 만일 이러한 취지를 제대로 수용하고 적절한 임금이 보장될 경우에는 큰 문제 없이 운영되어질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공기업이나 경영자들은 이 취지를 악용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저비용으로 안정적인 보장을 원하는 고용인을 최대한 활용하지만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점들을 최대한 이용한다.
김어준 총수는 그의 책 『건투를 빈다 -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 매뉴얼』 에서 ‘인생은 비정규직이다. 삶에 보직이란 없는 거라고. 직업 따위에 지레 포섭되지 말라고. 하고 싶은 거 닥치는 대로 덤벼서 최대한 이것저것 다 해봐라. 그러다 문득 정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개미군체의 병정개미는 되지 말라고.’ 기록한다. 결국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공식을 적용한것이라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폐해 확대와 취지를 무색케 하는 세력들 앞에서는 척결을 위해 싸움도 해야 하지만, 하루 이틀에 끝날 싸움이 아니기에 지금 감당할 그 시간들을 차라리 즐겨 가며 싸우는 것이 더 현명한 길로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직업이나 꿈을 결정하거나, 벌써부터 학생시절에 친구 사귐에 있어서도 애인이다 뭐다 제한적인 사귐에 갖히지 말라 한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보다 앞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더 많고, 아직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더 많기에 벌써 매이거나 정해진다는 것은 억울하고 어설프며 어리석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일찍 꿈을 찾아 오랜시간 갈고 닦은 이들이 간혹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 그런 영웅보다 보통의 사람들이 더 많고 또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이루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 이런 삶이 비관적이며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세상을 넓게 누리며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위 한 우물 판 이들의 소원 가운데는 우리가 너무도 소소하게 생각하는 그런 일상을 경험하지 못해 그들이 경험해 보고 싶다는 얘기들을 대부분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 철이 들고 또 은퇴를 하고 나면 결국 자신의 전공마저도 부족함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평생 보직이라 여기며 매였던 그 삶이 한 켠으로 세상을 넓고 깊게 살지 못한 자신을 책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직업 뿐 아니라 우리가 자의든 타의든 갖게 되는 사회적 위치나 관계에서 형성된 많은 일들 가령 친구, 자식, 부모, 동료, 선수등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 언제 고용해고 될지 모르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인생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시간들이 정해져 있든 그렇지 않든 다만 지금 일 할 수 있다는 사실과 부족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사는 비정규직 인생을 속히 인정하는 것이 지혜롭다. 비록 지금은 미생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완생으로 가는 여정에 있기에 오늘을 자족하며 즐거워함이 하루하루 쌓여갈 때 더 즐겁지 않겠는가!
웃는사람 라종렬 목사
광양시민신문 쉴만한물가 칼럼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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